큰 주젯거리는 아니지만 소소하게 작은 일들이기에,
시간 흐름 그대로 기억하고 싶네.
- 토 -
겨울이 성큼 찾아왔다. 난방의 코트하나 만으로는 낮에도 으슬으슬했다. 방돌이와 함께 점심밥을 먹고, 머리를 자르러 평소에 찾던 미용실에 갔었다. 아뿔사. 예약을 하지 않아서 저녁시간까지 예약이 꽉차있었으며, 두번째로 잘 가던 미용실은 갔더니 공사판만 덩그러니 있었다. 이전을 한 듯 싶다. 뭔가 꽁한 마음이었지만, 택시를 타고 학교로 들어오는길엔 토요일 오후의 여유로움이 묻어났고, 학교 도착하기 전에 내려 좀 걸었다. 음. 나뭇가지에 걸린 것들이 없어 앙상한 풍경이었지만, 뭐.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포항에 오셨다. 날 보시고 싶다고 전하는 그녀의 장난기 어린 말에, 행동으로 움직여서 보여드리기엔 아직 애매한 때기도 하여, 농으로나마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을 보여줬다. 아쉬운건 식당이라도 좀 예약해드렸으면 맘이 편했을것을 앞으로도 기회는 많겠지. 1월달에 대게먹으러 갈 때 한박스 정도 보내드리면 좋지 않을까 싶다.
저녁에 학부 동기 및 후배들과 밥을 먹었다. 이런저런 말이 많아지게 되면 으레 말실수도 할 때가 있게 되는데, 평소에 맘에 들지 않은 사람이 나에게 말실수를 했다. 기분이 매우 나빴고, 나도 말로 화살을 마구 쏴댔다. 음. 지나고 나면 후배들 앞에서 불편하게 왜 그랬나 싶기도 하다. 여튼 앞으로 보진 않을 것이다. 설사 그 말이 장난이던 나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은 이제 피한다. 음. 맞추기 귀찮다고나 할까. 내가 싫은 말 하는거 여러사람 앞에서 보이는 것도 피곤하고 여튼 그렇다. 사람은 참 말을 잘해야 하지만 말을 더 하려고 노력하다보면 더 안된다. 말로써 일이 커지거나 감당할 수 없을 땐 필요한 말만 적시적소에 하는게 좋다는 걸 배우고 있다.
밤엔 그녀와 카페를 갔다. 이따금 그녀는 패딩은 안이쁘다고 예전엔 사지 않았다고 툴툴댔지만, 산거보면 세월은 사람을 추위에 약하게 만들고 포항에서의 겨울바람은 생각보다 세나보다. 늦은 시간에 조용한 커피숍을 찾다가 유강에 있는 드랍탑을 갔었는데 음. 역시 조용한 곳은 이유가 있다. 책과 노트북을 펴놓고, 그녀와 함께한 것은 공부라 하기 어려운 공부다. 춥기에 연구실로 와서도 공부(!)를 했다.
- 일 -
계속 먹자. 배고픔에 우리는 빠르게 이동의 란나타이에 갔다. 새로 시켜본 타이 아이스티는 음. 매우 맛있더라. 내가 좋아하는 차이 스타일 홍차에 달콤한 연유를 듬뿍 탄 느낌이라서 좋다. 깽가리가이, 이제 이름도 외웠다. 코코넛 향이 나는 이 카레는 적당히 한국 스타일에 맞추어져서 그런지 매우 맛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크림새우덮밥이라 부를 만한 음식도 좋았다.
먹었으니 계속 걸었다. 서울 외곽의 신도시의 느낌을 주는 이동의 아파트들이 있었다. 그 아파트들의 담벼락을 따라 계속 걷다가 아는 누나가 추천해준 고로케집을 갔는데 주말은 열지 않는다. 메뉴판을 보면서 사랑스러운 고로케들의 맛을 상상했다. 이번주 평일날에 한 번 사냥하러 가야지. 배가 불러서 걷는데도 먹을걸 보면서 상상하고 취식을 다짐한 나는 정말 돼지인갑다. 꿀꿀. 계속 걸었다. 방장산 터널 즈음에서 우리는 서울 내곽 (오류, 구로?)의 느낌을 주는 마을로 빠지는 샛길을 따라 걸었고, 그 길의 이름과 이정표는 Thank you 투성이었다. 역시 감사도시 포항.
대단하다. 남구 이동에서 북구까지 하염없이 걸을 수 있는 우리들. 난 건강한 네 다리를 가진 우리를 다시 느끼며 행복했다. 영화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고 영민한 쇼핑방법을 통해 그녀는 매우 맘에 드는 니트원피스를 건졌다. 핏이 있는 그 옷은 매우 섹시했다. 음. 좋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를 영화관 음향으로 들었다. 집중해서 봤고 OST는 웅장했다네.
치즈에 푹빠진 불닭에 치즈를 한 번 더 추가하니 치즈가 범벅. 좋다 즐겁다 사랑스럽구나. 술도 좋아하는 우리는 소맥과 함께 열심히 달렸다. 세시간 가까이 달렸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일상에 좀 더 디테일한 감정의 교환, 그녀의 고민은 1이고 싶은 자신의 마음과 종종 0스러운 자신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괴리다. 조근조근 우리네 삶은 0과 1을 왔다갔다 할 수 밖에 없음을 많이 이야기했다. 이루는 것들에 대한 조급한 감정도 이야기했다. 일상은 생각보다 조밀하기에 이루는 것이 눈에 보이기 어렵고 조급할 수 밖에 없다고 대답 했다. 왠지 맘 속의 폭풍의 핵에 좀 더 다가간 느낌이었다.
이것들이 특별한 추억이다. 소소한 것들이 모여 추억이 되고 작은 즐거움으로 쌓인 관계는 풍파에 쉽사리 깎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주말의 일기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