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일기: 롤러코스터
2014. 11. 25. 00:30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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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과연 착한 사람인가? 착함의 경계가 있다면 누구에게까지 착할 것인가?
어제 옆 연구실 형과 과메기에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이야기한 것들이다.
사실 이 이슈는 고민이라기 보단 이미 어느정도 내 나름대로 결정 낸 사항이다.
나는 착한 사람은 아니다. 오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같이 간 사람의 자전거가 망가졌을 때, 난 그 사람의 자전거의 수리비용이나 기분보다는 내 흥이 깨짐에 속에서 길길이 날뛰는 짜증이 마음속 깊은곳에서 먼저 생긴 걸 느꼈다. 고로, 난 분명 착한 사람이 아니다. 물론 겉으로 표현을 하지도 않았고 표현할 필요도 없었고, 뭐 노래도 좀 부르고 하니까 좀 짜증이 풀리긴 했지만.
하지만, 내가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착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또한, 내가 그들에게 착할 수 있는 이유는 역시사지의 생각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있기에 그렇다. 때문에, 착하게 행동하고 더 그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도, 나를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대하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배려는 깊이 생각함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그들의 입장에서 깨달으려고 한다. 그만큼 상대방도 나의 배려가 내 착한 천성이나 바다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 노력임을 알길 바라는 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착한 (=소중한) 관계는 서로간에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배려의 소중함을 알 때 유지 된다.
그럼 그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 내 나름대로의 노하우(?)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남들도 적당한 나이쯤 되면 알게 되는 것인데, 그 사람의 배려에 칭찬함으로써 고마움을 표현하고, 내가 준 배려에 대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어느정도 솔직히 내비치는 것이다.
음. 이 방법에 대해 가끔 쿨하지 못하다고 상대의 저런 노력을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싹다 모아서 쿨몽둥이로 후두려 패야한다.
그리고 누구에게까지 착할 것인가?에도 답할 수 있게 된다.
이용가능성? 스펙? 이 모든것들보다 상대나 나의 배려에 얼마나 공감해줄 수 있는가가에 따라 결정되겠지.
글 쓰고 나니까 장기들이 밥달라고 졸라댄다.
밥이나 먹으면서 내 장기들에 대한 배려를 실천해야 겠다.
연구실에서 자전거타고 방으로 오는 길에 바람은 칼 같더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면 바람을 더 세게 맞고 냄새도 확실히 느끼기 때문에, 계절변화에 더 민감하다. 음. 겨울은 일찌감치 시작됐다고 느꼈지만, 그냥 오늘은 좀 더 강하게 느껴진걸로 봐선 온도도 온도지만 내가 느끼는게 달라서 그런지 싶다.
저녁에는 옆 연구실의 형님의 프로젝트에 디스커션을 한다고 하고선, 이리저리 감놔라 배놔라 한 느낌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열 올려서 이리저리 내가 생각한 것들을 다 이야기하면 소통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살짝 든다. 내 지도교수가 그런 스타일이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자각하는 순간이 제일 기분이 좀 그렇다. 뭐, 어쩌겠나? 그래도, 상대방이 하는 말과 질문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신경쓰면 큰 문제는 없겠지.
처음으로, 항상 이성으로 정도를 조절하려 했던 내가 날 좀 놔버렸다.
감정 깊이 마음을 준다. 상처가 두렵지만 마음이 그러는데 어찌 하겠는가.
언제나 항상 상대도 맘을 이해해줄 정도의 발맞춤이길 바랄 뿐이다.
이 영역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앞으로 가자.
오늘의 노래는 두 개.
Bill Evans - Like Someone in Love.
Andre Gagnon - Love The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