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미터짜리 줄자에 적힌 눈금의 중간 어딘가 쯤. 한 1미터 10센치미터 정도를 잡았다. 처음에 삶을 가늠하기 위해 펼쳐들어 뽑아낸 줄자의 길이는 짧디 짧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청춘을 어느 정도 삼킨 길이가 되었다. 아직도 작은 줄자통안에 감겨 있는 양은 많지만서도. 내가 잡은 줄자의 위치처럼, 삶은 앞도 뒤도 아득한 중간의 어딘가 쯤에 찍혀있다.
이쯤되면 사는 것은 별거 아닌 것들의 연속으로 느껴지면서도, 가끔씩 당황하게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매일이 꼭 새롭고 즐거운 삶도 아니지만, 가끔씩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날 당황케한다. 별거 아닌 행동들이나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깊게 생각한다. 내 삶을 내가 움직일 수 있는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거대한 풍파에 휩쓸리는가? 내가 가늠한 삶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삶의 원동력에 대한 답은 끊임없이 바뀐다.
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변수는 참으로 많다. 거기엔 내 자신도 포함된다. 나는 한때 대단한 것을 꿈꾸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며, 책임감을 강조하며 꼰대가 되다시피 열심히 무언갈 하다보니 나름 튀어보기기도 한다. 그러므로 삶은 완전히 주체적이지 않으며 또한 완전히 의존적이지도 않다. 남탓 내탓이 아니라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고. 특별한 사건도 순간순간에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들의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 거기엔 나, 남 모두 포함된다. 남 탓 할 필요도 없고 내 탓 할 필요도 없을 것이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또한, 남 탓 내 탓 다 해가면서 흘러간다. 좋은 일도 마음 속 깊이 자부하고 감사하며, 나쁜 일도 내 탓 남 탓 하는데 많은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지금쯤, 삶에 있어 내 기억과 기록들을 조금 더 소중히 느낄 수 있는 때가 아닐까 한다.